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희 정부/평가/부정적 평가/정치 (문단 편집) ==== [[부마민주항쟁]] ==== || {{{#ffffff '''역사다시보기 - 부마민주항쟁'''}}} ||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nvI-UGtx5kY)]}}} || > '''나는 그런 짓[* 부하에게 발포 명령을 맡기는 일. 실제로 내무부 장관 [[최인규]]가 [[4.19 혁명]] 당시 발포 명령을 내린 혐의로 사형당했다.] 안 한다. 나는 내가 (발포 명령을) 직접 한다. 그렇게 해서 대통령 물러가면 그만이지. 나를 사임까지 시키겠느냐?'''[* 대중들에게는 "앞으로 부산 같은 사태가 생기면 이제는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다. 자유당 때는 최인규나 곽영주가 발포명령을 하여 사형을 당하였지만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하면 대통령인 나를 누가 사형하겠느냐"라는 [[김재규/항소이유 보충서]]의 문구로 알려져 있지만, [[2011년]] 10월 17일 공개된 [[김재규]]의 최초 육성 진술 녹취록에 따르면 실제로는 인용문과 같았다고 한다. 그 직후 [[차지철]] 경호실장이 말한 [[킬링필드]] 발언("[[캄보디아]]에서는 300만 명 정도를 죽이고도 까딱 없었는데 우리도 데모대원 1~200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 있겠읍니까")도 유명하지만, 사실 최초 진술에는 차지철이 박정희의 발포명령 발언 당시 김재규, 박정희와 같이 있었다는 내용이 없다.][* 참고로 전술한 '부산 같은 사태'라는 말은 부마민주항쟁을 가리킨 말이 아니며, 정확히는 부마민주항쟁과 비슷한 일, 즉 다른 도시에서 일어날 민주화 운동을 지칭한 말이다.] >---- >[[박정희]], 부마항쟁 이후 [[김재규]]와 같이 식사를 하면서 남긴 말 [[http://m.ohmynews.com/NWS_Web/Mobile/at_pg.aspx?CNTN_CD=A0002254627#cb|#]][[http://h21.hani.co.kr/arti/special/special_general/25939.html|#2]][[http://m.pressian.com/ezview/article_main.html?no=139394|#3]] [[https://www.hani.co.kr/arti/society/society_general/501181.html|#4(김재규의 최초 진술 녹음 녹취록)]] 유신 정권 말기인 1979년에는 증세, 물가 폭등, 저임금 정책으로 민생고가 가중되면서 1만여 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한 [[부마민주항쟁]]이 일어나자 박정희는 직접 [[군경]] 투입을 지시하며 시위를 강경 진압하여 1,058명이 체포되었고 125명이 구금되었으며, 수많은 부상자와 최소 1명의 사망자를 냈다. [[http://www.mediatoday.co.kr/?mod=news&act=articleView&idxno=141351|#]] [include(틀:상세 내용, 문서명=부마민주항쟁)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